BLOG ARTICLE 세비야 | 7 ARTICLE FOUND

  1. 2007/03/23 [세비야]대성당
  2. 2007/03/22 [세비야]스페인광장
  3. 2007/03/21 [세비야]마리아루이사공원
  4. 2007/03/20 [세비야]황금의 탑
  5. 2007/03/19 [세비야]숙소 Hotel Isla Cartuja
  6. 2007/03/18 [세비아]플라멩고
  7. 2007/03/17 [스페인]세비야 (3)




'Magna Hispalensis'라고도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원래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Giralda로 알려진 The Almohade Minaret은 르네상스 부흥시기인 1568년에 만들어졌고 대성당은 1401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수세기에 거쳐 완공되었다. 오랜 시기에 건축된만큼 이 성당은 고딕·신고딕·르네상스양식이 섞여 있으며, 5개의 본당 회중석과 25개의 예배당을 갖춘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15세기의 스테인드 글라스, 정교한 15세기의 성가대석, 교회 제단 위쪽에 있는 고딕양식의 장식벽와 같은 예술적인 건축물들로 가득차 있다. 분리되어 있는 왕실 예배당에는 Murillo, Zurbaran, Valdes Leal, Goya 등의 작품들이 있으며 유리관안에는 두개골이 전시되어 있어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스페인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스페인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이 성당에는 고딕 양식의 건물로 높이가 90 m가 되는 히랄다(Giralda)탑이 있다. 이 탑은 원래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었으나, 후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이곳을 정복하고 나서 이 위에 종탑을 했다. 원래의 탑 모양과 같은 모양의 탑이 모로코의 마라케시와 라바트에도 있다. 히랄다 탑(La Giralda de Sevilla)은 사방 14 m의 4각형 탑으로 이슬람교도들이 12세기말에 세웠다. 그러다가 탑 위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예배 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고,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 탑의 이름도 풍향계 Giralda에서 나온 말이다. 이 여성상은 4 m 높이에 무게만도 1톤이다. 이렇게 해서 총 98 m의 탑이 1565∼68년에 완성되었다. 처음 그리스도교도들은 이 탑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차마 부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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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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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종탑(히랄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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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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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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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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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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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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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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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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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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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세비야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종탑위에 올라갔을 때가 낮 12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사라졌지만 유럽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알리는 시간이 되면 교회에서 종을 치는 곳이 아직 많다. 종탑에서 종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우리는 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종을 어떻게 누가 치는지도 궁금했고... 사제들 또는 종지기가 전통의 방식으로 종을 치기를 기다렸으나 기대와는 달리 기계가 자동으로 종을 쳐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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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울리는 종탑위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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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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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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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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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 바라본 세비야(북)









마리아 루이사 공원엘서 약 5~1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가다보면 스페인광장(에스파냐 광장)과 마주친다. 스페인광장은 과거 김태희가 300백만 화소의 LG CYON 광고에서 플라멩고를 췄던 바로 그 장소이며,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스페인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인접해 있으며, 대성당 동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세비야의 가장 인상적인 장소이다. 이 광장은 1929년에 열린 스페인·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만든곳으로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공간이다.

오늘날 광장에는 정부청사가 들어가 있으며 작은 강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보트를 빌려 탈 수도 있다. 광장은 반원의 형태로 둘려싸여진 양쪽에 탑이 있는 거대한 건물이 있으며 기둥의 아래부분은 여러칸으로 분류되어 스페인 모든 도시의 지도와 특색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이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은 워낙 도시도 많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원의 형태로 거대한 에스파냐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지방성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이곳을 방문하여 자신이 속한 도시앞에서 사진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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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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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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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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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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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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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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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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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보기








황금탑 구경을 마친 후 이동한 곳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였다. 이 공원은 1893년 산 텔모 궁전의 정원의 반을 도시에 기증한 마리아 루이사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만든 큰 공원이다. 1929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가 열렸던 곳으로 많은 흥미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의 작품인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스페인 광장, Pabellon Mudejar , Pabellon Real, 고고학 박물관이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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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및미풍양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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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및미풍양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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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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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베욘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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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안에 있던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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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飮水)대




스페인에서 맛보았던 오렌지는 그 맛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느 오렌지와도 맛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인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썬키스트나 플로리다산 오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당도가 높다. 그런데 이 맛있는 오렌지가 스페인의 가로수로 심어져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누군가에 의해 다 없어졌을 텐데. 그러나 현지 가이드 말로는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나무의 오렌지는 맛이 없어 줘도 안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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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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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으로 향하는 산책로









한국을 떠난지 3일 째 되는 날의 일정은 세비야 관광이었다. 세비야에서 첫 코스는 황금의탑이다. 세비야의 황금탑은 아랍인들의 통치 시대인 1221~1222년 사이에 적군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 배를 검문하기 위해 레알레스 알까사레스까지 연결되는 방어용 성곽의 일부로, 세비야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어귀에 세워진 12각형 모양의 탑이다.

세비야에 있는 Almohade 시대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이 탑의 이름이 "황금의 탑"이라 불린 이유는 몇가지 설이 있다. 처음 탑을 지을 당시 금 타일로 탑의 바깥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 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설 그리고 한때 돔을 덮었던 황금 타일로 햇빛이 반사된되서 연유되었다는 설이다.

반대편 강 둑에도 이와 비슷한 용도의 탑(은의 탑)을 세워 단단한 금속 사슬을 두 개의 탑 사이에 뻗게 함으로써 적군의 배가 강의 상류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탑의 용도는 화약고, 소성당, 감옥 그리고 항구의 사무실 등으로 다양했으나 이 곳에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났다는 인연으로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는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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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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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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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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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탑








플라멩고 공연을 관람하고 9시가 넘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 저녁을 못 먹었기 때문에 방 배정을 받기 전, 짐을 로비에 놔 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날 저녁식사는 닭요리 였다. 배고픔이 심해서인지 조금 과식을 한 우리는 그냥 잠을 청하기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룸메이트와 함께 숙소 주위를 가볍게 한 바퀴 뛰기로 했다. 우리는 가벼운 옷 차림으로 숙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숙소 하나퀴를 뛰기로 했는데... 이게 웬일? 밖에서 볼 땐 그리 크지 않아 보이던 숙소가 가도가도 끝이 안나오는 거다. 한바퀴를 다 뛰고 난 후에 안 사실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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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커 보이지 않는 세비야의 숙소 Hotel Isla Cartuja



아래 구글 위성 사진을 보면 왜 그리도 호텔이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 바로 호텔은 세비야 올림픽 스타디움 옆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호텔이였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뛴 한바퀴는 결국 스타디움 외부를 한바퀴 뛴 셈이였다. 일반적으로 육상경기장 1바퀴 트랙이 400m 이니 800m는 뛴 셈이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였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는 꽤 긴 거리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 덕 분에 배부름으로 인한 불편함은 조금 덜 수 있었다. 다음날 숙소를 출발하기 전에 보니 숙소 여기저기에 스타디움 안내 표지가 많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세비야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는 실제 올림픽이 열린적은 없다고 한다. 실제 올림픽 유치를 위해 지어졌으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치로  그 영광을 바르셀로나에 빼앗긴 셈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여기서 세비야의 숙소 Hotel Isla Cartuja 는 어떤 곳일까? 하나투어에 따르면 4성급 호텔로 세비야 교외에 자리잡고 있고, 200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호텔에서 시내 중심까지는 차로 조금만 가면 되고, 호텔은 레스토랑과 바, 4개의 컨퍼런스 룸, 커피 숍을 갖추고 있단다. 모든 객실은 미니바, 헤어 드라이어, 에어컨 등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호텔은 올림픽 경기장, Isla Magica 테마 파크에서 가깝다고 하는데, 실제 올림픽 경기장과는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딱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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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와 올림픽 스타디움(구글맵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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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움 안내표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떠나 저녁 7시 30분이 넘어서 스페인의 세비야에 도착했다. 원래 그라나다에서 선택관광인 플라멩고를 보기로 했으나 현지 가이드의 추천으로 세비야에서 보기로 했다. 세비야에서의 공연 시작 시간은 7시 30분 이였으나 우리가 그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까지 우리를 위해 기다렸는지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간 공연장은 "El Patio Sevillano"라는 바를 겸비한 극장으로 내부에는 자그만 무대에 1층 2층 객석과  바(Bar)로 구성되었다. 플라멩고의 원조 세비야답게 그 중에서도 훌륭한 무용수 들로 구성되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요금에는 입장권과 음료수 값이 포함되어 있다.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웨이터에게 스페인 맥주를 신청하고 플라멩고 공연을 관람했다. 플라멩고가 시작되자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카메라 스트랩(줄)이 맥주 컵에 걸리는 바람에 하나 깨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나마 다행인건 맥주가 차지 않은 빈 잔이었기에 맥주 손해는 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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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atio Sevil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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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atio Sevillano의 위치(구글맵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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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atio Sevillano 앞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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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atio Sevillano 옆의 투우장


플라멩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안 지방에서 전래된 민속음악과 무용으로 15세기 이후 처음에는 세비아와 그라나다 등의 도시에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바다나 강의 가까운 저지대의 상공업 지역에서 활동하던 집시들이 노래와 무용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다고 한다.

플라멩고 춤은 프라세오라고 하는 팔을 흔드는 동작, 손과 손가락의 움직임, 사파데아드 또는 사페테오라는 발의 움직임이 볼만한 장면이다. 기타와 신발소리에 의한 격한 리듬의 화음, 화려한 발 동작과 걸음걸이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있어야한다.우아한 움직임을 보통 파세오라고 말한다. 투우사가 입장하는 행진도 파세오에 속한다. 연기자는 매 순간 격한 움직임을 멈추고 포즈를 취하며, 이를 데즈프랑데라고 부른다. 이는 당당한 모습을 뜻하며 순간의 미를 표현한다고 한다.

남성은 잘맞는 조끼에 바지를 입고, 여성은 주름이 많고 긴 치마를 입고 춤춘다. 캐스터네츠를 반주 악기로 이용해서 춤추기도 하며, 노래가 반주될 때는 박수를 치면서 "오~~레이(잘한다)"를 외친다. 또한 캐스터네츠 대신에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고 리듬을 만드는 일도 집시춤에서 볼 수 있다.

기타는 플라멩고에서 빠질수 없는 반주 악기다. 손가락 끝을 직접 현(줄)에 대고 연주하는데, 연주자는 기타 본체를 오른손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리듬에 액센트를 준다. 리듬은 스페인에서 볼수 있는 민속무용과 공통적인 것이 많고, 박자는 3박자를 주로 이용한다. 탱고 플라멩고는 2박자의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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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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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 클럽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는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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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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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클럽 최고(最高)의 댄서로 나이가 60이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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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잘생긴 이 사람의 등장 이후에 인기가 점차 식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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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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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피날레








스페인

◈수도 : 마드리드(Madrid, 500만명)
◈인구 : 40,217,413명(2003.7월 추정치)
◈면적 : 501,788 km2 (한반도의 2.3배)
◈주요도시 : 바르셀로나(Barcelona), 그라나다(Granada),세비야(Sevilla)
◈주요민족 : 라틴족
◈주요언어 : 스페인어
◈종교 : 로마 가톨릭

역사

스페인에서 3만-1만 5000년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발견되므로 그 당시부터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게르만족에서부터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침략을 받아 왔으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5C중엽에 서고트인들이 이곳에 왕국을 세웠다. 이후 15C까지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44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 페르디난도의 결혼으로 통일국가를 이루게된다. 19C에 이르러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끈질긴 저항운동이 펼쳐졌으나 이후 1936-39년간 스페인 내란이 발생했다. 결과는 프랑코 총통이 이끄는 군부의 승리로 끝나게 돼 1975년 총통 사후까지 독재정치가 계속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놓이게 된다. 현재는 입헌군주국으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국회는 2원제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유럽 중에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며, 소맥, 감귤류,포도, 올리브 등이 유명하다. 또한 680㎞에 달하는 대서양의 천혜의 어장으로 원양어업 및 근해 어업이 모두 활발하다. 대표적인 공업으로는 기계, 조선, 섬유 등이나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이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지리

총면적은 50만 4788㎢이며, 한반도의 약2.5배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인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접해 있고 북서쪽은 대서양에, 동쪽으로는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다. 남서부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루며,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다.

기후

특색있는 지형과 해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낸다. 북서부의 대서양 연안은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비가 많으며, 마드리드를 포함하는 중부 고원지대와 남서부는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또한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내내 온난하다. 스페인 내륙 및 남부의 여름 햇빛과 더위는 너무 강열해서 반드시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여야 한다. 의류는 한국의 계절과 비슷하게 준비하면 된다.

사회문화

인구는 약 3,900만명으로 라틴계 스페인인이 주를 이루며, 원주민인 이베리아인, 로마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다양한 종족의 혼혈이 많다.공용어는 스페인어(카스티야어)이며, 이외에도 지역적으로 북부에는 갈리시아어, 동부에는 카탈루냐어가 사용되고 있다. 플라멩고를 비롯한 많은 민속무용이 발달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아랍풍의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술이 발달했고 가우디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도 배출되었다.


세비야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비야(Sevill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내 세비야 주(州)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의 상류 연안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오늘날 7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 이 곳 세비야 항은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 간 무역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새롭게 생겨난 항구들에 의해 중요도가 과거보다 약화되긴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들 중 대표격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세비야의 옛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로, 처음 이 곳에 정착한 것은 타르테시안(Tartessian)인들이었다. 기원전 207년경, 로마인들이 세비야에 들어오면서 이곳은 이후 7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서부 지중해 거점도시로 활약하였다. 서기 711년부터 1248년까지 계속된 무어(Moor)의 지배는 세비야를 비롯한 전 안달루시아 지방에 크나큰 흔적을 남겼다. 히랄다 탑(La Giralda)은 남아있는 이슬람 유적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17세기는 세비야 예술에 있어 전성기였다. Velazquez, Murillo and Valdes Leal와 같은 화가를 비롯해 조각가인 Martinez Montanes가 이 시기 세비야에서 태어났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또한 돈 후앙의 출생지로도 유명한 이 곳은 스페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20세기에 이르러 세비야에서는 범세계적 규모의 박람회들이 개최되었는데 1929년에 개최된 남미 엑스포를 통해 도시는 크게 번영하게 되었고, 콜롬부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서 1992년에는 세계 엑스포가 열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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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세비야(구글맵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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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중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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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볼거리(구글맵보기)